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 1개월, 현장은 '법'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권리보장법. 177명의 압도적 찬성은 37년간 장애인복지법을 대체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탈시설권리를 법에 명시하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국제 기준을 국내 입법에 담아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현장은 조용하다. 아니, 정확히는 혼란스럽다.
필자가 지난주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두 곳을 방문했을 때, 시설장들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법이 우리한테 뭘 하라는 거죠?" 한 곳은 이미 2인실 전환을 진행 중이었지만, 다른 한 곳은 여전히 관련 공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이 묻어났다.
'권리'를 '의무'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장애인권리보장법의 핵심은 패러다임 전환이다. 장애인을 '보호 대상'에서 '권리 주체'로 재정의한다. 탈시설, 자립, 자기결정이 이제는 선택지가 아닌 권리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는 분명 역사적 진전이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이 '권리'가 곧 자신들의 '의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의무가 무엇인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계속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탈시설권리가 명시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거주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본인이 시설 이용을 원한다면? 가족이 다른 의사를 표현한다면? 지역사회에 그들을 받아줄 주거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이런 질문들에 법은 '권리'라고만 말할 뿐, '어떻게'라고는 말해주지 않는다.
지난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거주시설 학대 예방·인권강화 대책을 보면 대규모 거주시설 107개소 인권실태 전수조사, 소규모화·1-2인실 전환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방향은 명확하다. 그런데 일정표는? 예산은? 지원 인력은?
'시행령 없는 기본법'의 딜레마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내일부터 무언가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봄통합지원법의 사례를 보자. 2024년 3월 제정되었지만, 올해 3월 27일에야 시행되었다. 그 사이 시행령·시행규칙이 제정되고, 시도와 시군구가 준비되고, 민간 기관들이 시스템을 갖춰야 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문제는 현장이 이 '대기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것과 나중에 준비할 것을 구분할 근거가 부족하다. 결국 일부 시설은 앞서 나가다 뒤바뀔 수 있고, 일부는 관망하다 뒤처질 수 있다.
실무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당신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의 종사자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마 이런 것들일 것이다.
첫째, 구체적인 로드맵. 법 통과 이후 시행령 제정까지 남은 기간은? 각 시설이 최소한 갖춰야 할 준비 과제는? 우선순위는?
둘째, 재정 확보의 약속. 소규모화·1-2인실 전환에 드는 비용은? 탈시설을 지원할 주거 인프라 조성에 지자체는 얼마를 투자하나? 종사자 추가 채용 예산은?
셋째, 현장 교육과 컨설팅. 법의 정신을 어떻게 실무에 담을 것인가? 서로 다른 상황의 장애인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지금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챙기기를 원한다.
시행령 제정 과정, 투명하게 공개하되 현장 의견도 담으라
보건복지부의 다음 과제는 명확하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빠르되 성글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서 제정하는 것이다.
법안 발의 후 10년을 기다린 것이 장애계다. 그렇다면 이제는 현장이 공백 속에서 방황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법은 '권리'를 선언했다. 이제 정책은 그 '권리'를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기본법'이 되려면, 단순히 법전에 기록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운영하는 모든 기관과 사람들이 '이게 나한테 뭔지, 나는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 그 과정이 필요한 때다. 법 통과의 감동이 채 식기 전에, 실무 준비의 현실로 돌아온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현장이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할 시점이다.
복지포커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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